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시다.
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짧은 구절이지만 이 시는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와 삶을 대하는 마음을 단번에 일깨워준다. 자세히 보아야 비로소 드러나는 미묘한 아름다움, 그리고 오래 두고 바라보아야 알 수 있는 깊은 사랑스러움. 이 단순한 진술은 작품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예술은 한 번의 시선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머물고, 다시 바라보고, 시간 속에서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그 본질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전시장 속 작품들도 오랫동안 바라볼수록 더욱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2016년, 이은정, 이주원, 하진 세 작가의 3인전 WONDERWALL 전시를 위해 만들었던 동명의 곡 wonderwall은 내 작업 중에서도 본격적으로 ‘전시장 앰비언트 음악’을 시도한 첫 곡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음악을 만들고 전시에 참여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출발이었다.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관람객이 전시장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 작품을 한 번 휙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차분히 앉거나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게 하고 싶었다. 한 사람이라도 1분, 아니 30초라도 더 오래 작품 앞에 머물러 준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머무름의 배경이 될 음악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작업은 생각보다 길어져 1시간이 넘는 음악이 완성되었다. 전시장에서는 그 오리지널 버전을 그대로 틀었다. 공간에 울려 퍼지는 긴 음악은 마치 또 하나의 전시물처럼,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벽처럼 관객에게 인식되기를 바랬다. 이후 발매를 위해서는 시간을 다소 줄여야 했기에, 곡을 정리하면서 약 45분 길이로 압축했다.
이 곡은 세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I - L’espace à l’envers [공간이면]
II - Transparent and old Wall [투명하고 오래된 벽]
III - Light wall [빛-벽] / Tilt down wall [기울어진 벽]

곡은 세 부분으로 나뉘지만, 일반적인 음악처럼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전개되는 구조는 아니다. 전시장 안에서 관람객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품을 보는 경험을 음악으로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한 파트가 분리되어 흐르기보다, 세 테마는 서로 얽히고 겹치며 섞인다. 관객이 어디에 서 있느냐, 어떤 작품 앞에 있느냐에 따라 그 순간의 음악적 결은 달리 들린다. 어떤 이에게는 투명하고 오래된 벽이 먼저 다가오고, 또 다른 이에게는 기울어진 벽이 먼저 마주칠 수도 있다. 이 불규칙한 경험의 층위가 바로 전시장의 리듬이고, 음악은 그것을 반영한다.
전시장에는 작가들이 세운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거대한 벽들이 서 있었다. 벽은 단순히 공간을 구획하는 물리적 장치가 아니라, 각 작가의 세계와 세계 사이를 잇거나 가르는 일종의 메타포였다. 관람객들은 그 벽 앞을 서성이고, 벽 뒤를 돌아보고, 때로는 벽과 벽 사이를 오가며 전시를 경험했다. 나는 이 벽을 음악으로 옮기고자 했다.

음악 wonderwall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작품과의 관계를 깊게 만들어 주는 배경. 그러나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공간 속에서 호흡하는 또 하나의 전시물이자,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공기를 매개하는 그 무엇이 되었으면 했고, 의도에 어느 정도 만족하며 전시를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디아트홀 공은 외부의 소음이 완벽히 차단된 공간이 아니었기에, 소음과 겹쳐진 의도된 소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누군가는 음악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심한 음악이야말로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아 두고, 시간을 조금 더 늘려주었다. 마치 풀꽃을 오래 바라볼 때 비로소 사랑스러움이 드러나는 것처럼, 이 음악은 오래 머무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용한 장치였다.
결국 이 작업은 이후 내가 전시와 음악을 연결하는 방식에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전시장의 앰비언트 음악은 단순히 전시 분위기를 꾸며주는 배경이 아니라, 관객의 태도와 시간을 바꾸는 힘을 가진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공간 속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지금까지 내가 음악을 만들고 전시를 기획할 때 중심에 두는 중요한 태도로 자리 잡고 있다.
https://youtu.be/qjGlpX7cpio?si=x02V5-fEREeRpHDP
https://www.gongcraft.net/?p=4597
WONDERWALL - GONG-gan TOU
WONDERWALL 이은정 이주원 하진 2016.7.15 – 2016.7.24
www.gongcraf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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