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들의 기억들은 매끄럽고 거대한 강처럼 연결돼 있다기 보다는, 미세하고 수많은 결절과 끊김,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은 흔들리고, 어떤 생각은 스치듯 떠올랐다 이내 사라진다. 판단은 늘 확고하지 않고, 감정은 늘 단일하지 않다. 어떤 실수는 금세 잊히고, 어떤 고요한 순간은 이유도 없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 반복되는 ‘작은 사건들’이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 속에서 삶은 조금씩 형태를 바꿔가며 쌓인다.
나는 그런 찰나들에 오랫동안 관심이 있었다. 크고 뚜렷한 서사가 아니라, 기억조차 흐릿한 순간들의 층위를 따라가고 싶었다. 벽에 부딪혔다가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물속에 잠긴 손끝을 타고 전해오는 미세한 파동처럼, 잡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었던’ 감각들. 그 감각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너무 작고, 너무 빠르고, 너무 흐릿해서 붙잡히지 않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분명하게 다가오는 종류의 감각이다.
그런 감각을 기록한다는 의미로 ECHO & FLOW 연작을 시작했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 연작과 정해진 몇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어떤 곡은 정말 짧아서 한 번 들으면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곡은 뜻밖에도 마음 깊은 곳에 파문처럼 퍼져나가 오래도록 울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바라는 건, 이 음악들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강한 인상을 남기거나 감동을 준다기 보다는, 오히려 조용히 스며들고, 언젠가 불쑥 되살아나는 감정의 메아리로 남는 것이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멈칫했던 순간들이 있다. 아주 사소한 풍경이거나, 어떤 사람의 표정이거나, 문득 떠오른 말 한마디 일 수도 있다. 그때의 마음은 대부분 말로 정리되지 않고, 감정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애매하고, 모호하고, 망설이는 감정들. 그 마음을 기억하는 가장 솔직한 방법 중 하나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때로는 '음'이기도 하고 때로는 '향'이기도 하다. 단어보다 느리고, 이미지보다 더 모호한 공기의 진동.
이 프로젝트는 내 음악적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작업은 아니다. 더 이상 음악이 정리된 감정이나 멋진 구조의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나는 이제 삶이 그렇게 단정한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명확한 모양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고, 다시 돌아오고, 때로는 잊히는 것들. 그 잊혀지는 것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싶다.
삶은 기억보다 빠르게 흐르고, 감정은 이름 붙이기도 전에 사라진다. 하지만 그 사라짐 속에도 분명히 존재했던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 무언가를 붙잡지 않으려 한다. 다만, 그 존재를 인정하고, 음악이라는 형태로 남겨 두고 싶다. ECHO & FLOW는 바로 그 소리들로 구성된 나의 일기장이며, 아무 말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나의 자화상이자, 내 삶의 사운드트랙과 같은 소리들이다.
당분간은 앨범 작업보다는 ECHO & FLOW 연작을 한곡 한곡 꾸준히 해 나갈 계획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들어줬으면 좋겠다.
https://on.soundcloud.com/lrEUENUbAxcaZNqOre
ECHO & FLOW
ECHO & FLOW is a series of musical works that seek to capture the emotions, thoughts, judgments, and mistakes embedded in life’s brief and fleeting moments. This project traces the subtle echoes of fe
soundclou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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