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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msa

스피드시대의 워터스파이더

전통적인 육체노동(농부, 어부, 나무꾼 등)에는 노동의 리듬을 돕거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육체적 고통과 지루함을 덜기 위한 노동요가 존재했다. 각 지역에서 자신들만의 말투로 불렀던 수많은 노동요는 오늘날 어떻게 변모했을까? 

1990년대 MBC라디오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귀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최상일 PD님이 우리소리박물관 초대 관장을 역임하던 2021년에,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를 녹음했던 그 당시의 그 노동요가 '현재는 어떻게 계승되고 있을까?' 더 늦기 전에 영상 기록을 담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나는 촬영팀 소속의  현장 사운드 채집으로 참여했었다. '길쌈노래'와 '나무꾼의 노래'를 다시 찾아갔지만, 이미 노동요는 사라져 있었다. 노동이 사라졌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래도 사라진 것이다. 

 

서울우리소리박물관 우리소리 ASMR '길쌈노래'
서울 우리소리 박물관 우리소리 ASMR '길쌈노래'

 

 

오늘날의 노동 현장에는 어떤 노래가 있을까. 나는 2024년 1년간 대형 물류 창고에서 일하면서 듣기만을 강요하는 노동요를 귀와 몸이 아프게 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우리가 그렇게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K-Pop이 노동 현장에서 노동을 착취하는 제1선에서 선전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절된 가사와 강한 비트의 음악이 높은 데시벨로 끊임없이 빠른 노동을 강요했다. 육체노동에서 오는 고단함, 스트레스, 피로가 음악으로 인해 다시 몸에 축적되고 증폭된다.

그 노동 현장을 하루만 경험해도, 고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을 그만두고, 나는 그때의 경험을 음악으로, 그리고 전시의 형태를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하면서 치유의 시간을 보냈다. 속도를 강요하는 노동 현장을 그리다 보니 모든 곡이 다운비트를 강조하는 일면 EDM과 비슷한 형태를 갖게 됐다. 하지만 내면에서 폭발해 흥을 만들어 내는 비트가 아니라 외부에서 끊임없이 강요하는 비트는 현장의 상황을 고려치 않는 컨베어벨트의 움직임과 더불어 기계가 때리는 채찍질 같았다. 따라서 매 마감 시간마다 속도에 질려 넋이 나가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그때의 감정으로 곡을 진행했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야간 근무에 투입돼 '워터스파이더'라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하루를 쫓아가는 곡의 흐름으로 구성돼 있다. 각 시간은 업무 투입부터 각 시간대별로 물류 차량에 상품을 상차 완료해야 하는 마감 시간으로 진행되며, 퇴근 후에도 온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던 경험을 담고 있다.

 

'밤 10시 4분의 워터스파이더'라는 곡만 10시 마감을 마치고 불현듯 느껴진 무력감과 암울함에 유일하게 10시에 조퇴를 했던 날, 공교롭게도 그날이 바로 2024년 12월 3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뉴스를 통해 알게 된 "계엄선포"가 전해 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한 기록이다. 

 

앨범에 수록 될 곡을 만들고  발매일을 기다리다는 동안에 끝나지 않을 듯한 답답한 소식만 들리더니, 4월 1일 발매가 되고 나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전 앨범 [a sign]과 이번 앨범 [Waterspiders in the Speed Era]는 윤석열로 대표되는 과거의 망령들 때문에 만들어진 앨범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두운 시기가 어서 빨리 물러나길 바래본다.

 

 

 

 

 

1. 스피드시대의 워터스파이더 
2. 오후 5시 46분의 워터스파이더. 
3. 밤 10시 4분의 워터스파이더.
4. 밤 11시 5분의 워터스파이더. 
5. 새벽 1시 37분의 워터스파이더 
6. 새벽 3시 58분의 워터스파이더 
7. 새벽 4시 32분의 워터스파이더 
8. 속삼임의 묘지 
9. 속삭임의 묘지 [basement edit]
10. 속삭임의 묘지 [exhibition edit]

 

1. Waterspiders in the Speed Era (2:33)
2. Waterspiders at 17:46 (3:08)
3. Waterspiders at 22:04 (3:14)
4. Waterspiders at 23:05 (2:36)
5. Waterspiders at 01:37 (2:59)
6. Waterspiders at 03:58 (2:02)
7. Waterspiders at 04:32 (2:58)
8. Whisper Cemetery (3:09)
9. Whisper Cemetery [basement edit] (6:43)
10. Whisper Cemetery [exhibition edit] (16:53)

 

You can listen to [Waterspiders in the Speed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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