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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msa

JOUMSA와 소리에 대한 대화

 

 

 

 

인터뷰어 : 봄 (문화예술 기획자)

일시: 2025년 6월 어느날

 

 

 

 

 

 


 

봄)  소리에 대한 태도와 철학

당신에게 '소리'란 무엇인가요?

소리를 예술의 재료로 삼을 때, 어떤 점에서 매혹되었고, 그것이 당신의 작업과 기획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나요?

또한, 일상 속 소리와 예술로 편성된 소리 사이에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조음사)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예술의 잠재적 재료로 보고 있습니다. 소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곳곳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유동적인 현상이며, 그 자체로 이미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텍스처입니다. 그리고 이 소리를 인지하고 해석해내는 인간의 귀는, 그야말로 정교하고도 특별한 신체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귀는 단순히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기관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느냐,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선택적으로 듣고, 조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관적 필터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으면, 온갖 종류의 소리들이 귀를 파고듭니다. 가까이서는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오고, 멀리서는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굉음이 웅웅거립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응급차가 울리는 경고음,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아이들이 웃으며 뛰노는 소리까지,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한 공간 안에 무수한 층위의 소리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소리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집중하는 소리가 다르고, 선택적으로 듣는 방식도 다릅니다. 누군가는 평온한 숲의 느낌을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다른 이는 그 소란스러운 도시의 소음을 더욱 크게 인식할 수도 있지요. 즉, 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도 각자의 감정 상태, 사고방식, 삶의 맥락에 따라 듣는 세계는 완전히 다르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저는 그 차이에 깊은 매력을 느낍니다.

 

제가 하는 작업은 바로 그 ‘선택된 소리’의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들리는 소리라 해도, 그것은 듣는 사람의 감성에 의해 변형되고, 재해석됩니다. 저는 제 감각을 따라 소리를 채집하고, 그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함으로써, 그 안에 감정과 이야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렇게 구성된 소리는 단순한 청각적 자료가 아닌, 타인의 감정과도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음악적 구조물이 됩니다. 결국 제 작업은 ‘들리는 것’을 넘어, ‘느껴지는 것’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술로서 소리를 다루는 제 방식입니다.


봄) 작업 과정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소리를 선별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현장에서 소리를 채집할 때의 기준이나, 소리를 재구성할 때의 감정적·미학적 원칙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또한, 이러한 과정이 실제 프로젝트로 이어질 때 어떤 형태로 구현되나요? 예를 들어 전시, 공연, 사운드워크 등.


조음사)

나는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가 점점 더 산업화되어가는 지금의 현실에 대해 사실 큰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시장을 겨냥한 포맷이나 유통 구조, 혹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방식보다는, 최소한의 비용과 단순한 수단으로도 충분히 창의적이고 깊이 있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가장 맞는 방식은 언제나 현실적인 제약 안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율적인 제작 방식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총 10장의 정규 앨범과 10장의 싱글을 발표해왔습니다. 각각의 앨범은 그 시기의 주제, 의도, 그리고 내가 처해 있는 감정적·사회적 환경에 따라 모두 다른 접근을 취했고, 결과물 또한 서로 전혀 다른 결을 갖고 있습니다. 작업 방식에는 일관성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과 태도는 언제나 일관됩니다.

 

제가 창작을 통해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단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듣는다'는 점입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명제는 제 작업 전반에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해왔습니다. 제가 만드는 음악에는 가사가 없을 수도 있고, 뚜렷한 메시지를 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사회적 이슈나 공동체의 방향성에 대한 깊은 고민이 깃들어 있습니다. 결국 음악은 나 개인의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시대와 공간을 감각적으로 공유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봄) 당신의 작업 철학은 소리 예술가로서의 독립성과 동시에, 사회적 감각을 함께 품고 있어 인상적입니다. 특히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듣는 것"이라는 중심 축은 작업의 다양성과 일관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강력한 지점이에요. 다음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가 볼게요.

예술의 사회성과 방향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앞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당신은 사회적인 이슈나 공동체의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신다고 했는데요.
작업을 통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요? 그리고 그 메시지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길 바라시나요?

당신이 추구하는 "공감 가능한 소리의 예술"에 대해 더 깊이 듣고 싶습니다.

 

조음사)

우리는 흔히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 속의 인간은 각자 고유한 가치관과 정치적 성향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이는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그 다양성은 사회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인간으로서 공유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감정이나 태도가 존재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정답이 다를 수밖에 없는 가치의 문제에 대해, 무작정 ‘맞다’ 혹은 ‘틀리다’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인간됨에서 비롯된 어떤 공통된 감각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사회적인 대참사—이를테면 세월호와 같은 집단적 비극—가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의 원인이나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인간이라면 당연히 먼저 슬픔을 느끼고,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본능이 발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가장 인간다운 반응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윤석열 같은 인물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그 집권기 내내 벌어지는 여러 현실을 목도하며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혼란, 어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 있는 상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단지 정치적 지지를 기준으로 나뉘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우리가 공유하는 불안의 정서이자 직관적 판단일 수 있습니다. 지지 여부를 떠나 그 현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생각보다 더 넓고 깊은 층위에서 공통적으로 형성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기에 저는 예술가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식의 애매한 중립은 때로는 무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예술이 갖고 있는 본래의 직관적 힘, 감정의 깊이, 진실을 향한 감각을 희석시키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 모호함을 꿰뚫어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감정에 근거하되, 시시비비가 분명한, 예리하면서도 인간적인 판단이어야 합니다.



봄) 예술과 감정

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싶으신가요?

예를 들어, 슬픔, 연대, 분노, 위로 등 감정의 결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조음사)

제가 예술가로서 가장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정서적 지향점은 ‘위로’와 ‘연대’입니다. 이 두 감정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존재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앰비언트 음악이라는 장르가 지닌 특유의 여백과 흐름, 그리고 비정형적인 구성은 이러한 감정을 전달하고 나누는 데 있어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된다고 믿습니다. 이 장르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내면의 파장과 정서를, 듣는 사람 각자의 감각 안에서 천천히 퍼지게 만들고, 결국에는 각기 다른 사람들 사이에 어떤 공통된 정서를 생성해내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감정들을 잠시 멈추게 하고, 무심코 누락되었던 감정들을 다시 되새기게 만드는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이 시대를 함께 통과하고 있다는 동시대적 연대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음악을 지향합니다. 그것은 어떤 거창한 메시지를 담거나, 분명한 언어로 설명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묘한 감정의 떨림과 삶의 기류 안에서 피어나는 공명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음악을 통해 말보다 더 깊은 위로를 받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처럼 내면의 감정과 사회적 감각을 동시에 담아내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사실 저 스스로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기법이나 이론으로 체계화되기보다는, 그것은 결국 제가 살아온 삶의 방식,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시대를 향한 제 감정의 진정성이 결정짓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이는 기술적 숙련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의 밀접한 일치, 즉 예술가로서의 태도와 성찰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음악을 만들 때, 그것이 누구를 향한 위로가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감정이 연결될 수 있을지를 먼저 떠올리며 작업에 임합니다.



봄) 대표작과 그 의미
지금까지 발표한 정규 앨범이나 싱글 중에서, 당신이 특히 애정을 갖고 있는 작업 한 가지를 소개해주시겠어요? 그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 담고자 했던 감정이나 메시지, 그리고 관객의 반응이 어땠는지 들려주세요.

조음사)

저에게 있어 Super Sad라는 앨범은 그 어떤 작업보다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입니다.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해왔지만, 이 앨범만큼 제 개인적인 감정과 시대적 정서를 진하게 담아낸 작업은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Super Sad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국가적 재난과 사회 전반의 무기력감이 우리 모두를 짓누르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앨범입니다. 우리는 그 참혹한 사건을 온 국민이 함께 목도했고, 사고 이후의 흐름 또한 매우 비정상적인 권력 구조와 대응 방식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감정의 깊은 바닥은 당시 사회 곳곳에서 퍼져 있었고, 저 또한 그 감정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앨범은 단지 저 개인의 작업이라기보다는, 당시에 같은 감정의 무게를 느끼고 있던 여러 작가들과 교류하고 연대하며 함께 나눈 이야기의 집합체이기도 합니다. 각 곡은 서로 다른 감정을 품고 있으며, 때로는 분노, 때로는 절망, 그리고 아주 작은 희망을 담아냅니다. 음악적으로는 대중적인 감각에서 꽤나 멀어져 있고, 형식적으로도 실험적이며 곡 길이 또한 길기 때문에, 일반 청취자에게는 쉽게 접근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앨범에 실린 곡 하나하나가 그 시기를 살아낸 사람으로서 반드시 남겨야 했던 기록이자, 기억을 위한 사운드 저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마지막 곡 “BEYOND”는 앨범 전체의 정서를 감싸 안으면서도, 결국엔 우리가 다시 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희망의 조심스러운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깊은 상실과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삶은 앞으로 흘러간다는 당연하면서도 벅찬 현실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물론 이 앨범은 대중적인 반향을 크게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 작업의 진정성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반응보다 중요한 것은, 이 앨범이 그 시대의 어떤 감정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고, 그것을 함께 느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는 분명 깊은 울림으로 전해졌으리라는 믿음입니다.

 

봄) 오늘 말씀을 들으며 느낀 것은, Super Sad라는 앨범이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의 고통을 함께 기억하고 기록하는 하나의 목소리였다는 점이에요. 대중적인 반향은 크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 감정의 결을 공유한 이들에게는 분명 깊은 울림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음사) 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결국 누군가와 감정을 나눌 수 있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봄) 특히 마지막 곡 "BEYOND"는 무력함 속에서도 결국 우리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도 강력한 위로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음사님의 음악은 소리를 통해 동시대의 고통을 기록하고, 그 안에서 위로와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음사)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음악이 삶과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과 아주 가까이서 숨 쉬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제 음악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 혹은 우리 사회를 다시 바라보는 작은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죠.

 

봄) 오늘 이렇게 귀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하나하나가 깊은 울림이 되었고, 무엇보다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조음사) 저야말로 제 이야기를 이렇게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스스로를 다시 성찰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rgSWCbv3kz4?si=ly8FOWggRqLlv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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