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WORK》
종이 표면에 깃든 내면의 풍경

미셸 푸코는 “사물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것이 위치하는 체계 속에서 그 의미를 획득한다.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평범한 사물인 종이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종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평면에 머무르지 않고, 종이가 놓인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층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종이는 우리 삶의 가장 일상적인 영역에서 늘 함께하지만, 그 익숙함은 때때로 그 본질을 가리는 안개와 같습니다.
종이는 우리 일상에서 수많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책장을 넘기고, 편지를 써 내려가고, 무엇인가를 감싸거나 포장하며,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버려지는 물질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고 가볍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시간과 기억,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찢기고 접히고 구겨지는 종이의 흔적들은 단순한 물리적 변화 그 이상이며, 한 장의 종이는 예술가에게는 내면의 풍경과 사유가 펼쳐지는 공간이 됩니다. 이 공간은 단지 표면이 아니라, 존재와 시간, 그리고 사유가 교차하는 다층적 장입니다.
종이가 지닌 이런 특성은 종이가 위치한 체계, 즉 예술이라는 맥락 속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종이는 예술가가 사유를 펼치고 감각을 형상화하는 매개체가 되며, 예술가의 내면과 세계관이 투영되는 ‘서사’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찢긴 자국, 접힌 선, 구겨진 흔적은 그 자체가 언어가 되어 감정과 시간을 전달합니다. 종이가 단순히 ‘재료’에서 ‘표현’으로 전환되는 순간, 그것은 의미를 창출하는 행위이자 존재의 증거가 됩니다.
또한 종이는 우리 각자가 경험하는 세계와 맺는 관계를 재구성하는 장입니다. 익숙한 종이의 물성을 넘어, 그 표면 위에 새겨진 흔적들은 각자의 기억과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종이는 ‘읽히는’ 대상이자 ‘느껴지는’ 대상이 되어, 보는 이와의 대화를 시작합니다. 종이 위에 남은 자국과 주름은 그 자체로 시간의 기록이자, 삶의 흔적이며, 우리가 존재함을 확인하는 흔들림 없는 증거가 됩니다.
종이는 물리적으로 매우 얇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경험은 무한한 깊이를 가집니다. 찢기고 구겨지고 접힌 흔적들은 인간 내면의 갈등과 고요함, 희망과 절망, 탄생과 소멸의 서사를 상징합니다. 이런 점에서 종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존재의 불확실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담는 ‘존재론적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이는 우리 삶의 다면성을 비추는 심연이자, 그 심연을 통과하는 빛의 통로가 됩니다.
예술가들은 종이를 다루면서 전통적인 경계와 형식을 넘나듭니다. 종이를 접고 자르고 태우며 변형시키는 행위는 단순한 물리적 조작이 아니라, 생성과 소멸, 물질과 정신의 순환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내면세계의 형상화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종이는 단순한 물질에서 작품 자체로, 언어로, 사유의 현장으로 탈바꿈합니다. 종이는 예술가와 관람자 사이의 감각적·정신적 소통의 장이며, 예술적 실천의 핵심 요소가 됩니다.
《PAPERWORK》 전시는 이러한 다층적인 시선과 다양한 기법을 통해 종이를 탐구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그 안에 스며든 시간과 감각, 그리고 존재의 무게를 경험하게 합니다. 전시는 익숙한 사물이 어떻게 낯설고 심오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지 보여주며, 예술과 삶, 존재에 관한 근원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나아가 전시는 종이라는 단순한 물질을 매개로 예술가와 관람자, 세계가 서로 교감하고, 각자의 내면에 새로운 감각과 사유의 지평을 여는 만남의 장이자 사유의 장으로 기능합니다.
종이는 또한 우리에게 ‘비어 있음’과 ‘충만함’이라는 양극단을 동시에 사유하게 합니다. 얇고 가벼운 물질임에도 그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시간이 담겨 있으며, 그 공간은 마치 들뢰즈가 말한 ‘차이의 반복’처럼 새로운 의미와 감각으로 끊임없이 생성됩니다. 종이는 단순한 표면 이상의 ‘경계 없는 공간’으로 확장되어, 내면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우리 존재의 불완전함과 가능성을 상기시킵니다.
이 전시가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평범하고 가벼워 보이는 종이 한 장에도 삶의 무게와 존재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그 속에서 예술은 태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던 것들 속에 숨어 있는 깊고 복합적인 의미를 재발견하고, 우리 존재의 불완전성과 그 안에 깃든 무한한 가능성을 사유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PAPERWORK》가 관람자 각자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사유와 감각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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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래된 편지지는 촉감이 마치 오래된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투박했다. 미세한 주름과 얼룩들은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속삭였고, 손때 묻은 구석구석마다 한 시대의 숨결이 살아 있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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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영등포 네트워크 예술제 참여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간만에 기획에만 집중하고 있다. 해야할 일의 목록을 만들고 하나씩 지워나가는 재미가 있다. 소소하지만 작가들에게 작업 진행비를 지원하는 전시이기에 마음도 조금은 편하게 진행하고 있다. 2025년 연중 프로젝트 PAPERWORK의 결과물들이 모이는 전시이기도 하고, 곧 1년이 끝나간다는 표식이 되기도 하는 전시다.
전시의 진행 사항은 아래 링크에서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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